5060이 뒤늦게 시작한 작은 일탈
아침에 눈을 뜨고 한참 천장을 바라봤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할 일이 없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출근 준비를 했을 시간이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라면 아침밥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을 시간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랐습니다.
아이들은 각자의 생활을 하고 있고, 나도 예전처럼 바쁘게 출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많아졌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나를 위해 뭘 해봤지?'
생각해보니 바로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가족과 여행을 간 적은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간 적도 많았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사는 데 돈을 쓴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조금 다르게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거창한 계획은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 하나만 해보기로 했습니다.

집을 나와 영화관에 갔습니다.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표를 한 장만 예매하면서도 괜히 주변을 한 번 둘러봤습니다.
'혼자 온 사람이 나밖에 없으면 어떡하지?'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영화를 보러 왔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왔다는 사실도 잊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밖으로 나오면서 웃음이 났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네.'
그동안 혼자 하는 것을 괜히 어렵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며칠 뒤에는 평일 오후에 카페에 들어가 봤습니다.
평소라면 회사에 있거나 집안일을 하고 있을 시간입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창가에 앉았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습니다.
할 일이 없으니 휴대폰을 계속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냥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사람들이 걸어가고 자동차가 지나갔습니다.
별것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이상하게 편했습니다.
그때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꼭 낭비되는 시간은 아니라는 것을요.

어느 주말에는 혼자 기차를 탔습니다.
멀리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냥 한 번도 제대로 걸어보지 않은 동네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도착해서 시장을 구경하고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메뉴를 고르고 시간을 맞추느라 조금 고민했을 겁니다.
하지만 혼자라서 마음대로 했습니다.
먹고 싶으면 먹고,
걷기 싫으면 쉬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한참 머물렀습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생각했습니다.
'여행이라는 게 꼭 유명한 곳에 가는 것은 아니구나.'
내가 평소와 다른 하루를 보내면 그것도 충분히 여행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욕심이 생겼습니다.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것도 생각났습니다.
사진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고, 기타도 한번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늘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빠서 못 했고,
돈이 아까워서 못 했고,
가족을 챙기느라 못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조금 시작해볼 시간은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수업부터 찾아봤습니다.
처음부터 잘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그냥 배우는 동안 즐거우면 됐습니다.
옷장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옷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젊었을 때 좋아했던 색깔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어느 순간부터 무난한 색만 입게 됐습니다.
괜히 튀는 것 같고, 나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날은 그냥 한번 입어봤습니다.
거울 앞에 서서 한참 웃었습니다.
조금 어색했습니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왜 나는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것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먼저 생각했을까.'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나이에 맞는 옷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좋아하는 색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오래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연락처를 찾아보니 전화번호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전화를 걸까 말까 한참 고민했습니다.
괜히 어색할 것 같았습니다.
결국 짧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잘 지내지? 갑자기 생각나서 연락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습니다.
"나도 가끔 네 생각했는데."
그 한마디를 보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서로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구였던 시간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한참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때부터 알게 됐습니다.
5060 이후의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은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요.
매일 여행을 떠날 필요도 없고,
갑자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필요도 없고,
젊은 사람들처럼 바쁘게 살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어느 날 영화관에 혼자 가보는 것.
평일 오후에 커피 한 잔을 마셔보는 것.
평소 가보지 않은 동네를 걸어보는 것.
오래된 친구에게 먼저 연락해보는 것.
배우고 싶었던 것을 조금씩 시작해보는 것.
그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오랫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직장에서는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가정에서는 책임져야 할 일이 있었고,
아이들에게는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해야 할 일이 조금씩 줄어듭니다.
처음에는 그게 허전합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그 빈자리에 이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넣을 수도 있다는 것을요.
며칠 전에는 아무 계획 없이 하루를 보냈습니다.
늦게 일어나서 천천히 밥을 먹고, 동네를 걸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책을 조금 읽다가 낮잠도 잤습니다.
예전 같으면 '오늘 아무것도 안 했네'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날은 달랐습니다.
'오늘 하루는 나를 위해 썼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5060이라는 나이가 특별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다만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길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볼 수 있는 나이인 것 같습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과 나를 챙기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일이 아닙니다.
자녀를 걱정하면서도 내 취미를 가질 수 있고,
배우자를 사랑하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혼자 여행을 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모든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만 줄 필요가 없으니까요.
혹시 요즘 하루가 너무 비슷하게 흘러간다고 느끼신다면 오늘 아주 작은 것 하나만 바꿔보세요.
평소와 다른 길로 걸어도 좋습니다.
혼자 커피를 마셔도 좋습니다.
보고 싶었던 영화를 봐도 좋습니다.
오래 연락하지 않은 친구에게 안부를 물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보세요.
"이건 나도 한번 해볼까?"
그 한마디가 생각보다 긴 변화를 시작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5060의 인생은 이미 많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아직 하루하루는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루를 누구를 위해 사용할지는 이제 조금씩 내가 결정해도 괜찮습니다.
늦게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한 것입니다.
다음 이야기
「친구가 갑자기 줄어든 이유|50대부터 인간관계가 달라지는 순간」
예전에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만나던 친구가 어느 순간 연락이 뜸해집니다.
싸운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50대가 되면 친구가 줄어드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다음 글에서는 나이가 들면서 인간관계가 달라지는 진짜 이유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