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 이야기

결혼한 지 20년, 우리는 왜 서로에게 서운해졌을까

슈빈이 아빠의 일상 2026. 8.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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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식탁에 마주 앉았습니다.

“밥 먹어.”

“응.”

그게 그날 아침 우리가 나눈 대화의 전부였습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20년 넘게 같이 살다 보면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 이상해졌습니다.

분명히 매일 얼굴을 보고 있는데, 정작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퇴근하면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이들 이야기가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주말이면 어디에 갈지, 무엇을 먹을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가고 각자의 생활을 시작하면서 집이 조금 조용해졌습니다.

처음에는 편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요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지?’

생각해보니 대부분 생활에 필요한 이야기였습니다.

“관리비 냈어?”

“내일 몇 시에 나가?”

“장 볼 거 없어?”

“병원 예약했어?”

해야 할 이야기는 많은데, 정작 서로의 마음을 묻는 말은 별로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배우자가 평소보다 조금 늦게 들어왔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물었습니다.

“왜 늦었어?”

“일이 좀 있었어.”

그게 끝이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을 텐데, 그날은 그냥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잠자리에 누우니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상대방이 서운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나도 서운했습니다.

서로 서운한데 서로 말하지 않는 상황.

생각해보면 참 이상했습니다.

20년을 함께 산 사람인데 말입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작은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제가 부탁한 것을 배우자가 잊어버렸습니다.

별것 아닌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화가 났습니다.

“그것 하나 기억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말을 하고 나서 저도 놀랐습니다.

사실 그 일 하나 때문에 화가 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쌓여 있던 작은 서운함들이 한꺼번에 나온 것 같았습니다.

배우자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요즘 나한테 부탁만 하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나도 상대방에게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밥을 차려주는 것도,

집안일을 하는 것도,

내가 아플 때 챙겨주는 것도,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냥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평소와 다르게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오늘 힘들었어?”

배우자가 잠시 저를 바라봤습니다.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봐?”

저도 웃었습니다.

“그냥.”

그 뒤로 한참 이야기를 했습니다.

회사 이야기도 했고,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자녀 걱정도 조금 했습니다.

그러다 예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였습니다.

둘이 처음 갔던 식당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20년이 넘었는데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오랜만에 같이 웃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부부 사이가 멀어진 것이 꼭 큰 문제가 생겼기 때문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요.

어쩌면 너무 익숙해져서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을 알아가기 위해 질문을 합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꿈이 있는지.

그런데 오래 함께 살다 보면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뭘 좋아하는지 내가 모르겠어?”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변합니다.

20년 전의 배우자와 지금의 배우자는 같은 사람이면서도 조금 다릅니다.

나도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돈을 많이 벌고 가족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지만, 지금은 건강이나 여유로운 생활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배우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에게 그 변화를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아주 작은 것을 하나 바꿔봤습니다.

하루에 한 번은 상대방에게 생활과 관계없는 질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뭐 먹고 싶어?”

대신,

“요즘 뭐 하고 싶어?”

“이번 주말 어디 갈까?”

대신,

“요즘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있어?”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니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놀랍게도 배우자가 생각보다 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가보고 싶은 곳도 있었고,

배워보고 싶은 것도 있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면서도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다시 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5060이 되면 부부의 관계도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녀가 중심이었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둘만 남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그때 갑자기 서로를 바라보면 어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늦은 것은 아닙니다.

20년을 함께 살았다는 것은 서로를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너무 익숙해서 다시 알아볼 기회를 놓쳤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요.

거창한 데이트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같이 동네를 걸어도 좋습니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좋습니다.

평소와 다른 식당에 가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을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도 조금씩 해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어색했습니다.

20년을 같이 살면서 이런 말을 새삼스럽게 하려니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한번 말하고 나니 별것 아니었습니다.

“오늘 고마웠어.”

그 한마디에 배우자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에게 고마운 것이 없어서 말을 안 한 것이 아니라, 고마운 것이 너무 당연해져서 말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혹시 요즘 배우자와 대화가 줄었다면 오늘 거창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이렇게 물어보세요.

“요즘 당신은 뭐가 제일 하고 싶어?”

처음에는 상대방도 당황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럼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냥 궁금해서.”

20년을 함께 살았어도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30년을 함께 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계속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래된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다시 알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결혼 생활이 오래됐다고 해서 늘 다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매일 데이트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끔 의견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서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괜찮습니다.

“오늘 어땠어?”

“요즘 힘든 건 없어?”

“당신은 뭐 하고 싶어?”

이런 말들이 다시 시작된다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도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20년을 함께 살았으니 이제는 서로를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제부터 다시 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젊었을 때는 함께 미래를 만들기 위해 만났다면,

5060 이후에는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다시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오늘 저녁 식탁에서 평소와 다른 질문 하나를 해보세요.

“당신, 요즘 뭐 하고 싶어?”

아마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다음 이야기

DAY 04|자녀가 독립하고 집이 조용해졌습니다|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두 번째 생활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 나면 처음에는 편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이 조용해지자 이상하게 허전해집니다.

매일 하던 잔소리도 없어지고, 기다릴 사람도 없어집니다.

그때부터 부모에게도 새로운 시간이 시작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자녀가 독립한 뒤 5060 부모가 처음 마주하게 되는 빈자리와 그 시간을 다시 채워가는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2026.08.25 - [5060 이야기] - 친구가 갑자기 줄어든 이유|50대가 되니 관계에도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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