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갑자기 물었습니다.
“당신은 친구가 몇 명이야?”
저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습니다.
“많지. 왜?”
아내가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진짜 친구 말이야.”
순간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휴대폰을 열어보면 연락처에는 수백 명이 있습니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도 있고, 학교 다닐 때 친구도 있고, 동네에서 알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단체 채팅방도 몇 개나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한 사람씩 떠올려보니 조금 이상했습니다.
내가 정말 힘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지?
그 질문을 받고 나니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들이 갑자기 다르게 보였습니다.
젊었을 때는 친구가 많았습니다.
학교 친구가 있었고, 직장 친구가 있었습니다.
퇴근하고 술 한잔할 사람도 있었고, 주말에 만나 놀러 갈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친구를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냥 전화하면 됐습니다.
“야, 오늘 뭐 해?”
“술 한잔할래?”
그러면 약속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50대가 되고 나니 조금 달라졌습니다.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바쁠 텐데 괜찮을까?’
‘갑자기 연락하면 이상하지 않을까?’
‘괜히 내 이야기를 하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결국 전화를 하지 않습니다.
며칠 뒤 오랜 친구에게 먼저 연락했습니다.
“잘 지내냐?”
친구가 한참 만에 답했습니다.
“살지 뭐. 너는?”
별것 아닌 대화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반가웠습니다.
알고 보니 친구도 비슷했습니다.
서로 연락하고 싶으면서도 괜히 바쁠까 봐 연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친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둘 다 참 웃긴다. 30년 친구인데 전화 한 통 하는 것도 눈치를 보네.”
그 말을 듣고 한참 웃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조금 마음이 짠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요?
5060이 되면 친구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꼭 친구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생활이 달라진 것입니다.
누군가는 아직 직장에 다니고,
누군가는 퇴직했고,
누군가는 자녀 때문에 바쁘고,
누군가는 부모님을 돌보고 있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약속을 잡는 것도 조심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친구 사이에도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깁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거리가 생겼다고 해서 마음까지 멀어진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아도 다시 만나면 어제 만난 것처럼 편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 친구가 진짜 친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토요일에는 친구 셋이 모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술집에 갔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달랐습니다.
한 친구가 운전해야 한다고 했고,
한 친구는 술을 별로 마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결국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기로 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녀 이야기부터 건강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다 한 친구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나 요즘 좀 외롭다.”
순간 아무도 웃지 않았습니다.
평소라면 농담으로 넘겼을 말인데, 그날은 이상하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우리 모두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많은데,
마음을 터놓을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것.
그게 5060의 외로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헤어지면서 친구 한 명이 말했습니다.
“우리 한 달에 한 번은 보자.”
다른 친구가 웃었습니다.
“그게 되겠냐?”
“안 되면 두 달에 한 번 보지 뭐.”
별것 아닌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꽤 좋았습니다.
매일 연락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매주 만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저 서로 잊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친구들 만났어.”
아내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재밌었어?”
“응. 생각보다 좋더라.”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당신도 친구들 자주 만나.”
아내가 웃었습니다.
“당신이 허락해줘야 만나나?”
저도 웃었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고.”
그날 저녁 우리는 각자 친구 이야기를 조금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로에게도 친구가 필요했습니다.
부부라고 해서 모든 이야기를 서로에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배우자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할 수도 있고,
친구와 웃으며 보낸 시간이 다시 집에서 좋은 기분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5060이 되면서 친구를 만나는 방법도 조금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예전처럼 몇 시간씩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됩니다.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합니다.
같이 산책을 해도 좋습니다.
시장에 가서 점심을 먹어도 좋습니다.
가끔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녀와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계속 만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친구를 기다리기만 하지 말고 먼저 연락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잘 지내?”
이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물론 모든 친구와 계속 연락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관계를 유지할 필요도 없습니다.
만나고 돌아왔을 때 마음이 편한 사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내가 잘되지 않았을 때도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몇 명만 있어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젊을 때는 친구의 숫자가 중요했다면,
나이가 들수록 친구와의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더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날 밤 다시 휴대폰 연락처를 열어봤습니다.
예전에는 이름만 잔뜩 저장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이 친구한테는 오랜만에 연락해볼까?’
‘이 사람은 한번 만나서 밥이나 먹어야겠다.’
그렇게 몇 명의 이름을 다시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오랜만이다. 시간 되면 밥 한번 먹자.”
답장은 금방 왔습니다.
“좋지. 언제 볼까?”
그 짧은 답장을 보면서 웃었습니다.
괜히 어렵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5060이 되면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이미 내 인생을 함께 지나온 사람들을 다시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20대에 함께 웃었던 친구,
30대에 함께 고생했던 친구,
40대에 서로 가족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구.
그 사람들도 지금 나와 비슷한 시간을 지나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들도 누군가 먼저 연락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한마디 보내보세요.
“잘 지내?”
그 말 하나가 오래 끊겼던 관계를 다시 이어줄 수도 있습니다.
아내가 물었던 질문이 생각납니다.
“당신은 친구가 몇 명이야?”
그날 저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친구가 몇 명인지 숫자로 세는
내가 힘들 때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 생각해보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숫자가 아주 많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한두 명이어도 좋습니다.
오래 연락하지 않았어도 다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충분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는 많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가끔 만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됩니다.
“야, 우리 그래도 오래 살았다.”
그 한마디에 함께 지나온 시간이 다 들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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